나에겐 8명의 조카가 있다.
그중에 첫 번째 조카는 그림그리는데 탁월한 소질이 있다.
9살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공룡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가끔씩 가족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면 우리 가족은 녀석의 솜씨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그림이 살아있는 듯, 특징을 정확히 파악하여 가느다란 선으로 표현해 내는 그에게는 그저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라고 밖에 다른 표현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조카에게는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부터 그렇게 좋아하는 그림그리기는 주말에 시간날때 밖에 하지 못하고
평일날의 대부분은 하기 싫은 수학문제와 씨름을 하면서 공부에 흥미를 잃어가는 것이 그것이다.
조카는 엄마에게 하기싫다고 불평도 해 보지만,
요즘같이 어릴적부터 학원공부로 자유시간을 빼앗긴 교육 환경에서 조카의 불평은 그저 어리광으로 들릴 뿐이다.
오늘 오랫만에 그 조카가 집에 왔다.
다음주에 수학경시대회가 있는데 아이가 공부하기 싫어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누나는 물었다.
나는 조카가 공부해야할 문제집을 잠시 집어 들었다.
나는 수학을 무척 좋아한다.
…
그런데 문제집을 보니 재미가 없었다.
그저 컴퓨터에 입력하면 나오는 기계적인 문제들이 대부분이었고,
창의적인 문제해결력을 요하는 내용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물론 초등학교 2학년이 풀만한 문제에서 얼마나 높은 수준을 요하겠냐만은
마치 전기회로를 연결하듯
호기심 많고 새로운 자극을 갈망하는 신선한 아이들의 두뇌에 강제적으로 전자계산 회로를 연결하는 것만 같아 안타까웠다.
그 조카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우리 집에서 살다시피 했기 때문에 나는 녀석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물었다. 무엇을 할때 가장 행복하냐고…
조카의 대답은 역시 간단 명료했다.
첫째, 그림그리기. 둘째, 만화보기. 셋째, 게임하기.
수학이 싫다며 인상을 찌푸렸던 녀석은 좋아하는 것을 말하니 얼굴에 금세 웃음이 가득하다.
그러면서 자기가 생각해낸 캐릭터가 몇개 있다고 했다.
나는 즉시 스케치북을 가져와 그에게 그것을 그려달라고 하였고, 그는 거침없이 그려 나갔다.
그의 그림은 언제나 나를 미소짓게 한다.
그림을 다 그린후 각 페이지마다 날짜를 쓰고, 녀석이 창조해낸 캐릭터에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나서 그와 약속을 했다.
지금 한 것처럼 그가 창조한 캐릭터로 스케치북을 다 채우면 삼촌에게 가져오라고.
그러면 삼촌이 이젠 컴퓨터로 그릴 수 있는 펜마우스를 사 주겠다고.
녀석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나는 녀석의 그런 천진한 웃음이 좋다.
나는 녀석에게 물어봤다.
네가 그린 그림이랑 만화가 TV에 나와서 많은 애들이 보면 어떨것 같냐고.
네가 컴퓨터로 작업한 애니메이션이 슈렉처럼 영화로도 나와서 많은 사람이 보면 어떨것 같냐고.
네가 만들어낸 캐릭터로 게임이 만들어져 많은 사람이 즐기면 어떨것 같냐고.
하늘만큼 땅만큼 기분 좋다고 녀석은 말했다.
나는 녀석의 그런 행복한 웃음을 처음 본 것 같다.
나는 덧붙였다.
네가 스케치북에 캐릭터로 가득 채워오면 삼촌은 펜마우스를 사줄 것이고,
그때부턴 컴퓨터로 작업하는 법도 배워서 차곡차곡 작품을 쌓아 나가라고.
그렇게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작품도 쌓이게 되고,
그러면 결국 TV, 영화, 게임으로 네 작품이 만들어 진다고.
매일같이 그런 행복한 꿈을 꾸라고 나는 말했다.
수학을 100점 맞을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의 기본적인것은 공부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지금까지 그렇게 단순한 선으로 표현된 살아있는 듯한 그림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녀석이 매우 특별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분명 10년 뒤엔 ‘박승주’라는 이름을 많은 사람이 알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의 후원자가 되어 줄 것이다.
그런데 내게도 걱정이 있다.
녀석이 원하는 것을 해 나가기 위해선, 대한민국 교육의 그리고 부모들의 획일화된 시선과 싸워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모난 돌이 정에 맞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너무나도 고리타분한 속담이지만,
요즘같이 치열한 세상에선 정에 맞아 둥글둥글한 돌로는 그 어떤 것도 베지 못한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모난 돌을 피나는 노력으로 갈아 날카롭게 만들어야 작은 것이라도 벨 수 있는 것이다.
내 생각엔 녀석은 수학, 한문보다는 다음의 세 가지에 집중하는게 좋을 것 같다.
첫째, 그림그리기.
둘째, 좋아하는것 계속 하기.
셋째, 영어공부.
나는 녀석의 실력이라면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히 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토이스토리의 픽사, 미키마우스의 월트디즈니, 리니지의 엔씨소프트.
녀석은 그 이상을 창조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믿고 싶다.
그리고 녀석을 그렇게 서포트할 것이다.